2015.07.21 01:32

조우성 변호사의 Must Know 


물품대금 채권의 소멸시효는 몇 년?

 

분야 / 채권회수



● 질문


당사는 거래업체인 A사에게 기계 부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사는 현재 약 3,000만 원의 미수금을 부담하고 있는데 2년 넘게 갚지 않고 있습니다언제까지 채권을 회수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하는지요?


● 답변


3년입니다.





● 해설


원칙적으로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입니다(민법 제162조 1).

하지만 상인(회사 포함)이 판매한 상품의 판매대가에 대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3년인바(민법 제163조 6), 이를 단기소멸시효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 비해 전문 상인(회사 포함)들은 자신들의 권리 보호에 더 민감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아 그와 같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다만 3년의 기간은 상품대금을 청구할 수 있을 때로부터 시간이 시작됩니다따라서 원래 결제하기로 한 날짜마다 별도로 3년간의 채권소멸시효가 진행됨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작성 : 기업분쟁 연구소(http://www.cdri.co.kr) 소장

조우성 변호사(wsj@cdri.co.kr)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5.07.21 00:32

조우성 변호사의 Must Know 


소멸시효 완성 시 채권자의 긴급조치방법

 

분야 / 채권회수


질문

 

당사가 A사로부터 물품대금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변제기로부터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물품대금 소멸시효는 3년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이렇게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돼 버린 채권은 이제 더 이상 행사할 수 없는 건가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답변

 

채무 확인서를 받으시길.

 

해설

 

1) 민법 제163조에 따르면 물품대금채권은 원칙적으로 3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합니다.

 

2) 소멸시효가 완성이 된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대금의 지급을 청구하면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지급을 거절할 수 있는 항변권이 생깁니다(이 말을 뒤집으면, 채무자가 아무런 이의제기나 항변을 하지 않고 대금을 주면 채권자는 유효하게 변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채무자가 변제를 거절할 수 있는 항변권이 발생하는 것이지 그 채권 자체가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3) 만약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황이라면 채권자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이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입니다.

 

4) 민법 제184조에 따르면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미리가 아니라 소멸시효가 완성된 이후에는 소멸시효의 효과를 포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5) 실무상 자주 활용되는 방법은, 채권자가 시치미를 뚝 떼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채무자에게 채무확인서를 받곤 합니다. 즉 채무자가 제가 이러저러한 내용의 채무를 부담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라는 확인서를 쓰는 것은 채무를 승인하는 것이고, 이러한 행위는 이미 발생한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본다는 것이 우리 대법원 판례입니다(대법원 1967. 2. 7. 선고 662173 판결 외 다수). 즉 채권자가 기교를 발휘해서 이미 죽어버린 채권을 살린 셈입니다.


(물론 이 경우 채무자가 "무슨 소리요? 이미 3년의 소멸시효가 지났으니 난 채무확인서 못써줍니다."라고 나오면 사실 물건너 간 셈이지요. 권리 위에 너무 오래 잠자는 바람에 그 권리는 사라져 버린 겁니다. 본인 탓을 할 수밖에요)


 


채 무 확 인 서


 

본인(김갑동)ABC 주식회사에 대해 2015. 8. 1. 현재 2,500만 원의 물품대금채무를 부담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2015. 8. 1.

 

김 갑 동 ()

 

ABC 주식회사              귀 중

 


6) 여기서 문득 의문이 듭니다. 위 상황에서 채무자는 속은 거 아닌가 라는. 채무자는, 자신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채무확인서를 써 주었다고 나중에 항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런 채무확인서를 써 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겠지요. 채무자는 바로 그 점을 들어 나중에 나는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고 분명 주장하려 할 것입니다.

 

7) 그런데 채무자의 이런 주장은 사실 쉽게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대법원은 채권이 법정기간의 경과로 인하여 소멸시효로 소멸된다는 것은 보통 일반적으로 아는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것이므로 채무자가 시효완성 후에 채무의 승인을 한 때에는 시효완성의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판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위 대법원 판결).

 

8) 아차 하는 사이에 소멸시효를 넘긴 경우,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이와 같은 채무확인서를 받아두는 것은 나중에 권리행사할 때 훨씬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는 점을 유의하시길.


Advice

 

1. 이미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서는 채무자에게 채무확인서를 받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2. 소멸시효 경과 후에 받아 둔 채무확인서는 채무자가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소멸시효의 이익을 포기한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

 

작성 : 기업분쟁 연구소(http://www.cdri.co.kr) 소장

조우성 변호사(wsj@cdri.co.kr)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2.24 01:24


조우성 변호사의 소송이야기 : 판사와 변호사의 부적절한 관계


C시 지방법원. 


지방도시 법원에서의 재판은 서울 법원에서의 재판과는 다른 독특한 느낌이 있다. 뭐랄까 좀 더 포근하고 인간적인...


나는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102호 법정으로 들어섰다. 판사석을 보니 대학 1년 후배인 K 판사가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나보다는 1년 늦게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K. 그동안 통 연락을 하지 않다가 이렇게 10여년 만에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대학시절, 도서관에서 자주 법리적인 논쟁을 벌이기도 했던 학구파 K. 나는 그와 같은 시골출신이라는 것에 동질감을 느꼈다. 


지금도 기억난다. 어느 겨울. K가 찢어진 운동화를 신고 있는 것을 보고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과외 아르바이트 받은 돈으로 나이키 운동화를 하나 선물했었다.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고맙게 받아주던 K. 세월이 많이도 흘렀구나.



내 사건 진행 차례가 되어 K에게 슬쩍 눈인사를 하고 재판을 시작했다. 이미 내가 주장할 내용은 다 서면으로 제출한 상태라 이번 기일에는 재판을 종결지으면 되었다.  다음 기일은 선고기일이라 굳이 내가 출석할 필요가 없었다(민사사건의 경우 선고기일에는 변호사가 출석하지 않고 직원이 선고 결과만 파악하는 것이 관례다). 


나는 재판 진행을 마치고 변호사 석에서 가방을 챙기다가, 다음 사건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사건 내용이 좀 특이했다. 


원고는 OO 캐피탈, 피고는 어느 할아버지. OO 캐피탈은 11년 전 할아버지의 아들에게 3,000만 원을 대출해 줬고, 할아버지는 아들의 대출채무에 대해 연대보증을 섰다. 그런데 돈을 빌린 지 6개월 만에 아들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OO 캐피탈은 오랜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서류 더미에서 이 내용을 발견하고는 할아버지를 상대로 연대보증에 따른 대출채무를 갚으라고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연체기간이 10년이 넘다보니 이자가 원금보다 더 커서 소송금액은 9,000만 원이 넘었다. 할아버지에게는 집이 한 채 있었는데 OO 캐피탈은 그 집에 가압류를 걸어 놓은 다음 이 사건 청구를 했다. 할아버지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혼자서 재판을 진행 중이었다.


“아이구 판사님, 우리 부부가 평생 일해서 겨우 집 하나 갖고 있습니다. 한 번만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사건에서 할아버지가 패소하면 OO 캐피탈은 승소 판결문을 가지고 할아버지 집을 경매에 넘긴 후 누군가가 낙찰을 받게 되면 그 낙찰대금에서 자신들의 채권을 회수해 갈 수 있다. 사정이 너무 딱했다.


K 판사는 OO 캐피탈측 변호사에게 질문했다.


“아니, 이렇게 오랫동안 묵혀뒀다가 소송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변호사는 “아, 죄송합니다. 내막을 알아보니 원고 회사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이 사건 서류가 제대로 관리가 안 되었나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소송을 늦게 제기했다고 해서 재판을 안 할 수는 없는 것.


할아버지는 계속 K판사에게 “판사님, 제발 저희 늙은이들에게 선처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읍소했다. 민사재판이라는 것이 그렇게 하소연한다고 자기 원하는 대로 결론이 내려질 수는 없다.


K 판사는 OO 캐피탈측 변호사에게 “이 사건, 조정할 생각 없으신가요? 보니까 피고 사정이 딱한 것 같은데.”라고 물었다. K 판사는 원고 청구 금액 중 일부를 양보하게 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볼 것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러자 변호사는 “저희 의뢰인은 조정할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그냥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라고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계속 법정에 남아서 그 사건이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K 판사는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예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K 판사의 성품이라면, 이 사건에서 할아버지에게 패소판결을 내리는 것에 대해 정말 마음 아파할 것 같았다. 하지만 판사는 법에 정해진 대로 재판을 하는 사람일 뿐, 억울하다고 해서 무조건 할아버지 편을 들 수는 없다. K 판사는 할아버지에게 조언을 했다.



“할아버지, 이 사건을 혼자서 진행하지 마시고 변호사나 법무사를 통해서 물어보시고 제대로 진행하십시오,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서 법적으로 대응하셔야 합니다. 그냥 선처해 달라고 하시면 저희 판사들은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민사재판에서의 판사는 철저히 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원고나 피고가 ‘주장한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을 해야 한다(소위 ‘당사자 주의’, ‘처분권 주의’). 즉, 원고나 피고는 자신에게 유리한 공격, 방어방법이 있을 경우 그것을 법정에서 명시적으로 주장하지 않으면 판사는 이를 판단할 수 없다. 판사가 지레 짐작하여 그 내용을 다 판단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참 딱하다는 생각을 하며 변호사석에서 일어서는데, K 판사가 나를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제가 다시 한 번 말씀드리는데요, 기록을 잘 살펴보시면 답변할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판사라서 그것을 가르쳐 드릴 수 없구요. 꼭 변호사님을 찾아가서 기록 한 번만 봐 달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좋은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K 판사는 이 말을 하면서 3번이나 나를 쳐다봤다. 


‘뭐지? 내게 하는 얘긴가?’


일단 나는 법정을 나왔다. 곧이어 할아버지가 눈물을 닦으며 법정을 나오셨다. 나는 할아버지께 명함을 내밀고는 소송기록을 잠깐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선선히 기록을 내밀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소송기록. 전체를 읽어보는 데 10분이면 충분했다. 나는 왜 K 판사가 아까 나를 그렇게 쳐다봤는지 이해가 됐다. 


‘소멸시효 문제로군’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주었더라도 채권자(빚을 받을 사람)가 일정한 기간 동안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상대방(채무자)은 “당신은 왜 오랜 기간 동안 내게 돈 갚으라고 하지 않았소?”라면서 채권자의 청구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정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권리를 소멸시키는 ‘소멸시효’의 법리이다. 


그런데 문제는 재판과정에서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이익을 얻으려면 채무자 스스로 소멸시효 주장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채무자가 소멸시효 주장을 하지 않았는데 판사가 직권으로 소멸시효 판단을 하게 되면 이는 위법한 재판이 된다.


OO 캐피탈이 할아버지의 아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이 11년 전. 그리고 그 아들이 이자를 갚다가 사망한 것은 10년 6개월 전. 그렇다면 결국 OO 캐피탈은 10년 6개월 전부터 보증인인 할아버지에게 돈을 갚으라는 청구를 할 수 있었는데도 이를 게을리하고 있다가 이제야 그 청구를 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법정에서 한번만 봐달라고 울면서 애원할 것이 아니라 “원고의 채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어야 합니다.”라는 주장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오케이! 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근처 PC방으로 갔다. 그 곳에서 20분 정도 시간을 들여 간단한 ‘준비서면’을 작성한 후 3부를 출력했다. 


“할아버지, 이 서류를 지금 법원에 가서 접수하십시오.”


할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그래도 변호사라는 사람이 서류를 만들어 주니 신뢰하는 눈치였다.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총총히 법원으로 들어가시는 할아버지.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났을 때 나는 K 판사의 전화를 받았다.


“선배님, 그 때 그 할아버지건 잘 됐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승소하셨습니다.”

“어? 그걸 왜 내게?”

“그 할아버지 재판 당일 바로 준비서면 접수됐잖아요. 선배님 작품인 거 압니다.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판사가 그렇게 마음이 물러서 어떡하노?”



“선배님... 제게 책 주셨던 거 기억하세요?”


책이라…. 그랬구나. 1992년. 내가 사법시험에 합격한 직후 하숙집을 찾아온 K가 어렵게 꺼낸 말.


“선배님, 혹시 보시던 책… 제게 몇 권 주실 수 있으신가요?”


법률서적이 워낙 고가여서 나나 K 같은 지방 고학생들에게는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되었다. 나는 “그래, 안 그래도 저 놈의 책들, 징글징글하다. 모조리 가져가 버려라. 난 깨끗한 책 사서 보면 되지.”면서 20여권의 책을 줬던 것 같다. K가 이야기를 하니 그 제야 기억이 났다. 저 친구는 그 때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구나.






판사는 수많은 분쟁에 대해 양 측의 주장을 들어 판단하고 그 결과를 선언하는 사람이다. 변호사는 자신에게 의뢰한 의뢰인의 입장만 대변하면 되지만 판사는 분쟁 당사자 양 측의 주장을 다 들은 후 공정한 결론을 내야 하기 때문에 그 직업적인 고민은 변호사의 그것보다 더 클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법에도 인정(人情)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법을 다루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인정에 이끌려 사건을 처리할 때는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K 판사처럼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판사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앞으로도 법정에서 K 판사가 따뜻하고도 사려 깊은 재판진행을 해주길 기원하고 또 응원한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2012.10.13 17:46

조우성 변호사의 "호모 콘트락투스" (Homo Contractus)



'호모 콘트락투스(계약하는 인간)'은 다양한 법격언과 법조문을 통해 비춰 본 우리 네 세상살이를 에피소드 형태로 그려낸 연작물입니다.

 

지난 호 보기 : 제1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http://www.jowoosung.com/958

 

 

제2화 :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G사 기획팀 손00 차장.

 

경력직으로 입사한 윤00과장을 부하직원으로 받게 되었다.

G사에서만 10년째 잔뼈가 굵은 손차장은 윤과장의 사수가 되었다.

 

윤과장은 모든 면에서 기존 부하직원들과 비교되었다.

탁월한 추진력, 번뜩이는 기획력, 왕성한 친화력.

 

사실 손차장은 그 동안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서도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윤과장은 그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특히 손차장이 윤과장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다른 부서와의 협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점이다. 기획팀은 항상 새로운 일을 추진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팀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킬 우려가 많았는데, 윤과장은 그 과정에서도 사전에 갈등이 예견되는 부서의 부장이나 차장을 찾아가서 미리 사전 작업을 해 놓는 등 정치력을 발휘했기에, 기획안이 만들어진 이후에 이를 회사 내부적으로 추진함에 있어서 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손차장은 이제야 회사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윤과장이 기획팀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거의 대부분의 일은 윤과장에게 사실상 전결권(專決權)을 부여했다. 윤과장이 세부적인 사항을 보고할라치면 됐어. 자네가 보고 판단하면 돼.”라고 믿음을 주었다. 윤과장은 자신에게 신뢰를 보이는 손차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어떻게든 손차장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손차장은 업무부담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자 평소 마음에만 두고 실행하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자기계발에 열을 올렸다. 예전에는 야근도 많이 했지만, 윤과장이 착실하게 업무를 담당하게 된 이후부터는 대부분 정시퇴근을 한 뒤 여가시간을 즐겼다.

 

윤과장이 기획팀에 배속된 지 어언 2.

 

손차장은 기획팀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완벽하게 꿰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기획팀의 모든 일을 전부 장악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더욱이 기획팀과 주로 협업을 담당하는 비서실이나 영업팀의 실무자(차장, 과장)들은 모두 윤과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으며, 손차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윤과장의 태도다.

 

이제 어느 정도 G사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회사 내 조직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윤과장, 업무적으로도 그다지 손차장의 간섭이나 지도를 받지 않게 되자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아졌고, 어쩌다가 손차장이 한마디씩 하면 눈에 띄게 이를 귀찮아하거나 때로는 반발하곤 했다.

 

심지어 CEO 조차 윤과장을 직접 불러서 업무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윤과장은 수시로 CEO에게 특별 Report’를 작성해서 보고하는 등, CEO에게도 착실하게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윤과장의 존재가 오히려 손차장에게는 부담이 되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회사 내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됩니다. 전 거의 허수아비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안옵니다.”

 

 

...................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손차장의 푸념을 들으면서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오래된 영미법상의 법 격언이다.

 

원래 이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 법에도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을 채권이 있어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않으면 그 채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채권의 소멸시효제도나, 내가 어느 땅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 땅을 일정 기간 점유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물권의 취득시효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손차장은 G사의 기획팀 차장으로서 여러 가지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부하인 윤과장에게 하나 둘씩 위임을 해 버렸고, 윤과장은 처음에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권한을 행사했지만,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자 주위 사람들은 물론 윤과장 자신도 손차장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 마치 처음부터 윤과장의 것인 양 오해하게 되었다.

 

손차장은 자신의 권한(권리) 위에서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자버린 것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권한은 이제 이름만 남아 있고 그 실질은 없는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근육은 계속 쓰지 않으면 퇴화된다고 하는데, 권한(권리)도 그런 것인가 보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