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3. 17:46

조우성 변호사의 "호모 콘트락투스" (Homo Contractus)



'호모 콘트락투스(계약하는 인간)'은 다양한 법격언과 법조문을 통해 비춰 본 우리 네 세상살이를 에피소드 형태로 그려낸 연작물입니다.

 

지난 호 보기 : 제1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http://www.jowoosung.com/958

 

 

제2화 :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G사 기획팀 손00 차장.

 

경력직으로 입사한 윤00과장을 부하직원으로 받게 되었다.

G사에서만 10년째 잔뼈가 굵은 손차장은 윤과장의 사수가 되었다.

 

윤과장은 모든 면에서 기존 부하직원들과 비교되었다.

탁월한 추진력, 번뜩이는 기획력, 왕성한 친화력.

 

사실 손차장은 그 동안 부하직원들에게 일을 맡기고서도 온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었는데, 윤과장은 그 우려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특히 손차장이 윤과장을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다른 부서와의 협업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점이다. 기획팀은 항상 새로운 일을 추진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팀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킬 우려가 많았는데, 윤과장은 그 과정에서도 사전에 갈등이 예견되는 부서의 부장이나 차장을 찾아가서 미리 사전 작업을 해 놓는 등 정치력을 발휘했기에, 기획안이 만들어진 이후에 이를 회사 내부적으로 추진함에 있어서 별 무리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손차장은 이제야 회사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윤과장이 기획팀에 들어온 지 6개월 만에 거의 대부분의 일은 윤과장에게 사실상 전결권(專決權)을 부여했다. 윤과장이 세부적인 사항을 보고할라치면 됐어. 자네가 보고 판단하면 돼.”라고 믿음을 주었다. 윤과장은 자신에게 신뢰를 보이는 손차장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어떻게든 손차장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손차장은 업무부담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자 평소 마음에만 두고 실행하지 못했던 취미생활과 자기계발에 열을 올렸다. 예전에는 야근도 많이 했지만, 윤과장이 착실하게 업무를 담당하게 된 이후부터는 대부분 정시퇴근을 한 뒤 여가시간을 즐겼다.

 

윤과장이 기획팀에 배속된 지 어언 2.

 

손차장은 기획팀에서 진행되는 일들을 완벽하게 꿰지 못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기획팀의 모든 일을 전부 장악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더욱이 기획팀과 주로 협업을 담당하는 비서실이나 영업팀의 실무자(차장, 과장)들은 모두 윤과장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었으며, 손차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지극히 제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윤과장의 태도다.

 

이제 어느 정도 G사에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회사 내 조직원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한 윤과장, 업무적으로도 그다지 손차장의 간섭이나 지도를 받지 않게 되자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아졌고, 어쩌다가 손차장이 한마디씩 하면 눈에 띄게 이를 귀찮아하거나 때로는 반발하곤 했다.

 

심지어 CEO 조차 윤과장을 직접 불러서 업무지시를 하는 것이었다.

 

윤과장은 수시로 CEO에게 특별 Report’를 작성해서 보고하는 등, CEO에게도 착실하게 점수를 땄다는 것이다.

 

윤과장의 존재가 오히려 손차장에게는 부담이 되는 지경으로까지 발전한 것이다.

 

회사 내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됩니다. 전 거의 허수아비 취급을 당하고 있습니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안옵니다.”

 

 

...................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손차장의 푸념을 들으면서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오래된 영미법상의 법 격언이다.

 

원래 이 말은, 자신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 법에도 다양하게 규정되어 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받을 채권이 있어도 일정한 기간 동안 그 권리행사를 하지 않으면 그 채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되는 채권의 소멸시효제도나, 내가 어느 땅의 소유자라 하더라도 누군가가 그 땅을 일정 기간 점유하고 있으면 나중에는 내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하는 물권의 취득시효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손차장은 G사의 기획팀 차장으로서 여러 가지 권한을 부여받았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부하인 윤과장에게 하나 둘씩 위임을 해 버렸고, 윤과장은 처음에는 고마운 마음으로 그 권한을 행사했지만,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자 주위 사람들은 물론 윤과장 자신도 손차장에 의해 부여된 권한이 마치 처음부터 윤과장의 것인 양 오해하게 되었다.

 

손차장은 자신의 권한(권리) 위에서 너무 오랫동안 잠을 자버린 것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의 권한은 이제 이름만 남아 있고 그 실질은 없는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근육은 계속 쓰지 않으면 퇴화된다고 하는데, 권한(권리)도 그런 것인가 보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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