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0. 13. 15:08

조우성 변호사의 "호모 콘트락투스" (Homo Contractus)



'호모 콘트락투스(계약하는 인간)'은 다양한 법격언과 법조문을 통해 비춰 본 우리 네 세상살이를 에피소드 형태로 그려낸 연작물입니다.

 

 

제1화 : Pacta Sund Servanda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모임에서 알게 된 김부장.

화통한 성격과 특유의 친화력이 강점인 사람이다.

 

같은 모임 멤버인 박차장.

상사인 부장 대신 이 모임에 참석한 그는 말 수가 적은 편이고, 소심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작년 여름 모임에서 신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자리에서 박차장은 당시 회사가 선택을 놓고 고민 중인 두 가지 아이디어를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던 김부장은 “박차장님, A 프로젝트 그거 맘에 드는데요? 우리 회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과 접목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회사가 아마 가장 큰 바이어가 될 수도 있을 건데요?”라면서 박차장이 이야기 한 두 프로젝트 중 A 프로젝트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반색한 박차장.

“정말 가능성 있을까요?”

 

기획팀인 박차장으로서는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이 팀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향후 회사 내 거취에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

 

김부장은 자기네 회사의 needs와도 잘 맞을 것 같으니 적극 추진해 보시고, 나중에 진행에 따라 연락주면 접점을 마련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 후, 나는 그 구체적인 진행상황을 알 수 없었다.

 

 

6개월 뒤 다른 자리에서 박차장을 만났다. 술을 한잔 먹더니 김부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박차장은 김부장의 말을 믿고 열심히 A 프로젝트를 진행시켰다. 김부장네 회사는 업계에서 정평이 난 곳이므로 그 회사가 A 프로젝트 결과물을 구매해 준다면 박차장으로서는 첫단추를 쉽게 끼울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박차장 회사 내부적으로는 B 프로젝트에 대해 긍정적인 분위기가 더 많았으나 박차장은 김부장을 믿고 내부 설득작업을 통해 A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박차장은 그 와중에서도 중간 중간 김부장에게 A 프로젝트의 진행상황을 설명해 주었고, 김부장은 “네, 아주 좋네요. 기대합니다.”라는 식의 덕담을 해주었다고 한다.

 

A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나오려 한 시점, 박차장은 정식으로 김부장에게 제안서를 보냈다. 그런데 김부장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아, 저희 회사가 이 제품을 구매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뭐라구요?

 

김부장은 아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박차장의 제안을 여러차례 거절했다.

 

김부장은 그 특유의 사람좋은 넉살로 덕담을 했던 것일 뿐, 진심으로 박차장의 프로젝트를 지지하거나 협업을 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차장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던 것이고.

박차장이 회사 내에서 곤경에 빠지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박차장은 이를 갈고 있었다.


“내가 그 자의 말을 그대로 믿었던 게 문제지요. 좋습니다. 나도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그 자 뒤통수를 한번 때려버릴 겁니다. 말빚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항상 립서비스만 하던 김부장,

박차장으로 인해 앞으로 곤란한 처지를 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박차장을 말릴 수 있겠나.

 

 

한 상인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배가 물에 가라앉게 되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해 몸부림을 치며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지나가던 어부가 배를 타고 구해주러 왔다. 상인이 말했다.

 

"당신이 만약 나를 구해주면 금 100냥을 주겠소!"

 

그런데 어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기슭에 오르자 상인은 그에게 금 80냥만 주었다.

 

"애초에 약속하기를 금 100냥을 준다고 하지 않았소?"

 

어부는 상인에게 신용을 지키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상인은 반대로 어부가 욕심이 너무 많다고 핀잔을 주었다.

어부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고 가버렸다.

 

몇년 후 상인은 배를 타다가 또 위험에 부닥치고 말았는데, 묘하게도 지난 번 자신을 구해준 어부를 비롯한 여러명의 어부들과 다시 마주했다.

 

"저 사람이 바로 말에 신용이 없는 사람이다."

 

어부가 곁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여러 어부들은 그 상인이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배를 세우고 구해주려 하지 않았다. 결국 상인은 강물에 빠져 죽었다.

- 명나라 학자 유기의 저서 '울리자(鬱離子)' 중에서 -

 

 

“pacta sunt servanda”(팍타 준트 제르반다)

‘약속은 꼭 지켜져야 한다’는 뜻의 라틴어 법격언이다.

 

 


 

법대생이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이 격언.

약속을 해 놓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게 되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분란을 야기하게 됨으로 이를 경계하라는 가르침이다.

 

약속을 바람에 날려버릴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못함에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약속의 무게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내가 한 약속들, 지금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어떻게 무럭 무럭 자라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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