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19. 00:34


조우성 변호사의 '내 얘기를 들어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2권 - 제1화


흔들린 우정



“뭐, 이렇게 홀가분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네. 이젠 좀 자유롭게 살고 싶어.” 


오재영 씨의 씁쓸한 웃음에 김정훈 씨는 아무 말 없이 친구에게 술을 권했다. 


고등학교 시절 반장 겸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재영씨, 그에 비해 정훈씨는 바닥을 기는 성적에 성격도 내성적이라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정훈씨를 항상 챙겨준 재영씨.


정훈씨는 항상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뭔가를 구상하고 이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했다. 재영씨의 가방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여러 기괴한 모형이 그려진 설계도가 가득했다.

자칫하면 친구들 사이에 왕따가 될 수도 있었던 정훈씨였지만, 다른 친구들의 우상이었던 재영씨가 항상 정훈씨와 같이 있었기에 정훈씨의 학창시절은 별 문제가 없었다.


“그래, 앞으로 뭘 할 건가?”


정훈씨는 재영씨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S그룹에서 승승장구하던 재영씨는 부하의 불미스런 횡령사고에 연대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래도 자네가 참 부럽구먼. 자넨 사장이잖아? 큰 회사에 있을 때는 언제까지나 잘 나갈 줄 알고 목에 힘주고 살았는데, 이렇게 들려 나오니 정말 막막하네. 이 나이에 다른 곳에 취직하기도 그렇고...”


정훈씨는 원래부터 갖고 있던 손재주를 바탕으로 조그만 공업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정훈씨는 머쓱해진 분위기를 돌리려고 자기가 개발 중인 자동차의 엔진 성능 강화방안 아이디어를 꺼냈다.


“내가 몇 년째 개발 중인 거야, 잘만 하면 대박이 날 것도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어.”


정훈씨는 설계도를 보여주면서 현재까지 진행된 내용을 설명했다. 재영씨는  S그룹에서 자동차 관련 일을 하고 있었기에 정훈씨의 설명을 관심 있게 들었다.


“자네도 알잖아. 내가 발명하는 건 자신 있어. 그런데 이걸 사업화하려면 큰 회사들도 만나고 그래야 하는데, 영 그쪽으로는 재주가 없으니 말야. 하여튼 이건 잘만 되면 진짜 획기적인 건데...”


그로부터 6개월 후 정훈씨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국내 완성차 업체인 D사에 소개했다. 


D사는 그렇지 않아도 이 분야 기술을 찾고 있었는데 정훈씨의 기술을 도입할 수 있다면 차량의 성능과 연비 부분에 획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D사는 정훈씨의 기술을 검토한 뒤 그 적용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대대적인 언론 플레이를 준비했다. 정훈씨도 평생 조그만 규모의 공업사만 운영하다가 이번에야 제대로 된 사업화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대가 부풀었다.


“변호사님, 솔직히 와이프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뽐내고 싶었답니다. 남편으로서의 존재감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지요.”


정훈씨는 D사로부터 라이센스 계약서 초안을 받았다. 그 초안에 따르면 기술도입 관련 계약금으로 5억, 추후 이 기술이 D사의 완성차에 적용될 때는 1대당 소정의 로열티를 계속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정훈씨의 개발 인생에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때 예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D사의 경쟁사인 H사가 D사에게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그 내용인 즉, 현재 D사가 완성차에 적용하려는 정훈씨의 기술은 이미 3개월 전에 H사가 특허로 출원한 내용과 동일하며, H사의 특허는 곧 등록될 것이 확실하므로 D사는 문제의 기술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내용증명으로 D사는 발칵 뒤집혔다. 


D사 담당자들은 정훈씨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화를 냈고, 정훈씨 역시 적이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던 것을 불과 몇 달 전에 H사가 특허출원하다니...


정훈씨는 H사의 특허출원서류를 살펴보았다. 그 서류에 따르면 출원자는 ‘H사’로 되어 있지만, ‘발명자’는 자신의 친구인 ‘오재영’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특허에서 중요한 것은 출원자이고, 출원자가 나중에 특허권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 특허를 최초에 발명한 발명자도 출원서에 기재하도록 하는데, 발명자와 출원자가 서로 다른 경우에는 발명자가 출원자에게 특허에 대한 권리를 넘기고 일정한 대가를 받은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정훈씨는 집히는 것이 있어 재영씨와 연락을 취해 보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 날, 재영이 그 친구가 날 찾아왔을 때 난 자랑한답시고 설계도나 관련 자료를 다 보여줬지요. 기억해 보니 그 때 제가 30분 정도 자리를 비웠었는데 그 때 자료들을 사진 찍어 갔나 봅니다.” 


H사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은 상황에서 향후 어떻게 처리할지 상의하기 위해 나를 찾온 정훈씨. 그는 친구에 대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내게 그 친구는 참 멋지고 존경스런 친구였는데. 이렇게 사람 뒤통수를 칠 수 있는 겁니까?”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우선 특허법 제103조에 따르면 정훈씨는 선사용(先使用)에 따른 권리를 가질 수 있다. 즉, H사가 특허출원하기 전에 정훈씨는 이미 그 내용으로 사업의 준비를 하고 있었으므로, 나중에 H사가 특허 등록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훈씨가 이 발명을 사용(통상실시)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정훈씨만이 사용할 수 있을 뿐 이를 제3자(예를 들어 D사)에게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센스를 주려면 특허권자인 H사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H사가 이에 동의할 리가 없다.

결국 정훈씨가 이 기술을 D사와 같은 큰 회사에 라이센스를 주지 못한다면 사업적인 활용도는 크게 떨어지게 된다.



“결국 공격이 최선의 방어일 것 같습니다.”


내가 정훈씨에게 제안한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적어도 재영씨가 정훈씨의 아이디어를 훔쳐 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재영씨는 정훈씨의 설계도룰 몰래 촬영한 후 이를 복원해서 H사에게 제공했을 것인데, 이는 정훈씨의 ‘저작물’을 함부로 복재한 것이므로 저작권 침해가 성립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단 H사에 대해서는 ‘재영씨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고소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이 문제가 종결될 때까지는 H사 역시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다.


정훈씨는 친구를 상대로 형사고소를 해야 한다는 나의 설명에 곤혹스러워했다. 나는 “원치 않으시면 고소를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방법이 이것 뿐입니다.”라고 조언했다. 


정훈씨는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했고 며칠 뒤에 내가 시키는 대로 따르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그래서 나는 1차적으로 H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① 문제가 된 기술은 원래 김정훈 씨의 발명이라는 점, ② 김정훈씨의 친구인 오재영씨가 불법적으로 김정훈씨의 설계도면을 복제한 뒤 이를 H사에 넘긴 것이라는 점, ③ 김정훈씨는 오재영씨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형사고소를 할 것이라는 점, ④ 따라서 H사로서는 실체적 사실관계가 밝혀지는 것을 잘 살펴보고 사업화에 돌입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점


나는 내용증명 발송 후 오재영씨에 대한 형사고소장을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H사의 법무담당자가 연락이 왔다.


H사 내부적으로 윤리경영에 대해 민감한 상황이라 이 건이 확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고 있고, 따라서 이 건 기술 관련해서는 H사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오재영씨에게 지급했던 돈을 돌려받기로 하고 이 특허출원건은 다시 오재영씨에게 반환하는 것으로 처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부르며 정훈씨에게 반가운 마음으로 연락했다. 그런데 정훈씨의 목소리가 침울했다.


정훈씨의 기술을 도입하기로 했던 D사 역시, 이 기술이 앞으로 특허권의 존재 여부와 관련하여 문제가 될 것이라는 내부 판단 때문에 도입자체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기술의 상용화를 할 수 있는 국내 메이저 업체 두 곳이 다 이 기술의 도입을 포기하고 말았기에 정훈씨도 재영씨도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정훈씨가 마음으로 우러러 봤던 멋진 친구인 재영씨. 


하지만 재영씨는 결정적인 배신행위로 그를 우러러 본 친구에게 치명적인 손해를 입히고 말았다. 30년 우정도 이해관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일까.


내게는 ‘시험에 들어보지 않은 우정’이야말로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 준 사건이었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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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효지 2013.05.19 0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친구 우정이란 것도 믿을 것이 못되는군요 씁쓸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다더니......

  2. 아쉽네요 2013.05.23 0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허법에는 모인 출원이 있었던 경우 정당 권리자가 출원하여 모인 출원을 돌려 받은 제도가 있습니다(특허법 34조 참조). 이 제도를 이용했다면 원 발명자분이 보호받으실 수 있었을텐데....(더 아쉬운 것은 원 발명자분이 해당 특허를 출원하지 않으셨던 부분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