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12. 03:34


'내 이야기를 들어 줄 단 한사람이 있다면' - 프롤로그 -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나 역량은 무엇인가요?”


대형로펌에서 근무한 지 17년째. 대외활동이 점점 많아지니 이런 질문을 이따금씩 듣게 된다.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 과연 뭘까. 쉽게 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본질’을 건드리는 질문이라 그런가.


흔히들 ‘재판’은 실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거의 특정한 상황에 대해 대립되는 두 당사자(원고와 피고)가 자신의 기억에 근거해서 상반되는 주장을 할 때 이를 대리해야 하는 변호사도, 마지막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도 본질적인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 진실의 문턱에라도 도달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재판은 법에 따라 진행된다. 재판을 업으로 하는 변호사인 내게 있어 ‘법’은 모든 문제를 규정짓고 해결할 수 있는 만능 도깨비방망이 같은 존재일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법은 세세한 인간감정의 결이 녹아있지 않은 지극히 형식적이고 불완전한 규범의 존재양식일 뿐이다. 법은 가장 최소한의 규범만을 제시하는 소극적인 개념이지 인간성을 회복하고 사람을 살리는 적극적인 개념으로서의 속성은 갖고 있지 못하다. 


재판이 어느 한 편의 승소로 끝났을 때, 패소한 반대편 당사자는 억울함과 분노에 몸을 떤다. 그는 그 판결에 승복하지도 못할 뿐더러 그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송은 마음에 상처를 입은 자들의 싸움이다. 돈과 관련된 다툼이 있다고 해서 모두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송절차까지 갔다는 것은 마음속의 분노와 원망이 켜켜이 쌓여 결국 칼로 도려내야 할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상처받은 사람들 중 어느 한 편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돈을 받고 상대방의 목숨을 노리며 싸우던 로마 검투사처럼 승리를 위해 필살기를 동원해서 싸워야만 하나? 

의뢰인이 재판을 통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방에 대한 완벽한 승소? 분명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좋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최고의 덕목’이라는 질문에 대한 보편타당한 모범답안을 찾으려 거창하게 방황하기보다 지나온 나의 변호사 생활을 돌이켜 보며 나만의 답이라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컴퓨터에 폴더별로 정리돼 있는 소송사건들을 뒤적여 보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들을 써내려가고 내 느낌을 얹는 작업을 시작했다. 


때로는 나를 기쁘게 하고 때로는 나를 절망에 빠뜨리게 했던 여러 사건들을 되짚어 보는 과정에서 변호사라는 업에 요구되는 가장 본질적인 덕목은 의외로 ‘잘 듣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우선 의뢰인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 


의뢰인은 자신의 고통을 공감해 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법적 지식을 갖고 있는 변호사라도 의뢰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다그치면 의뢰인은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의뢰인과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면 사건을 진행할 수 없다. 격해져 있는 의뢰인이 그 감정을 제대로 표출할 수 있도록 경청하고 서서히 호흡을 가다듬게 한 다음 이성의 광장으로 의뢰인을 유도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때로는 의뢰인 스스로 감정이 정리되고 사건이 촉발된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면 소송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경우까지 있다.


변호사는 의뢰인 못지않게 소송 상대방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이미 소송까지 온 상황에서 의뢰인은 소송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방의 이야기를 곡해하고 그 주장의 진실성을 의심할 따름이다. 하지만 변호사는 소송 상대방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예민한 촉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만이 의뢰인이 놓치고 있는 분쟁의 핵심요인을 찾아낼 수 있으며, 일방적인 승패가 아닌 양쪽이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기 위한 미세한 가능성을 건질 수 있다. 


결국 좋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동시에 상대방의 이야기 역시 경청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이 그 분쟁 속에서 상처 받은 사람을 위로하고 화를 풀게 만들어 문제의 근본을 해결할 수 있다. 






1997년 변호사 생활을 처음 시작할 당시 나는 차를 몰고 다니지 않아 스스로를 '뚜벅이 변호사'라 불렀다. 차가 생긴 후에도 '뚜벅이 변호사'는 계속해서 나의 별명, 필명이 되었다. 


쉽게 흔들리지 않고, 또 지치지도 않은 채 내가 지향하는 바를 향해 뚜벅 뚜벅 걸어간다는 의미를 부여하면서 ‘뚜벅이 변호사’는 내가 변호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데 하나의 모토가 되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좌절의 늪에서 빠져나와 멋지게 재기한 사람, 성공의 꼭대기에서 추락해 철저히 부서진 사람, 다른 이의 신뢰를 철저하게 이용한 사람, 위선의 가면을 쓰고 거짓인생을 살았던 사람,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한 사람 등...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에서 나는, 세상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주 촘촘하게 짜여진 그물망 같은 곳이라 서로 간에 끝없이 좋든 나쁘든 영향을 주고 받으며 움직이고 있다는 준엄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변호사가 되고픈 분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쯤은 읽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차가운 이성과 논리력이 변호사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 생각하는 분들께 꼭 그렇지는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또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고 아직도 고통의 심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분들께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 초고를 읽고 마음 속에서 떨쳐내지 못하던 분노의 대상을 용서하게 됐다는 분이 있었다. 책에 나오는 여러 사연을 통해 ‘인생의 모습은 저마다의 사연이 다 있구나. 그 사람도 그 만큼 힘들었겠구나’라는 제3자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다양한 인생살이의 모습 속에서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삶의 지혜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얻고 싶은 분들께도 이 책속의 다양한 색깔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그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수 없다.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은 일반적으로 좁게 해석되지만 변호사인 나로서는 내가 다루었던 사건들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될 법적인 의무 보다 더 강력한 윤리적인 의무가 있다. 나의 가정사나 개인적인 느낌들, 그리고 실제 사건의 주인공으로부터 승낙을 얻은 십여 개의 에피소드를 제외한 나머지 에피소드는 내가 다루었던 사건에서 기본적인 모티브는 따오되 상당 부분 각색을 하거나 몇 개의 스토리를 합치는 작업을 진행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직업도 실제 사례의 것들을 모두 변경했음을 밝혀 둔다. 



끝으로 이 책의 출간을 통해, 매일 밤늦게 퇴근하는 아들을 보면서 걱정하시던 부모님, 주말에도 제대로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아내와 두 딸 혜리와 세영이에게, 당신의 아들이 그리고 당신의 남편이자 아빠가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아왔는지를 담담하게 보여 드림으로써 그 동안의 소홀함에 어느 정도 면죄부를 받고자 하는 얄팍한 마음을 담아 본다.




Posted by ETHOS 조우성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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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닭큐 2013.03.12 03: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을 쓴다는 건 역사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라 들었습니다.

    축하드리고, 나중에 책 사들고 대형서점에 저자 사인 한 번 받으러 가야겠군요. 팬사인회 하실거죠? ^^